*  정현아~ 창작자와 비평가는 엄연히 달라.
    나는 창작보다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었어.
    내가 너의 글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적고 이런저런 비평을 할지도 몰라. 아마 그중에
    네가 정말로 받아들이고 채택해야할 것도 있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은 것들도 분명히 많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한테 자기글을 보고서 의견을 달라고하는 용기를 낸만큼, 충고중에서도 아니다 싶은건 쳐내는 것도 대범함도 필요할 거야~
    어떤 것을 준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삶 / 너의 인생에 내 작은 조언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

인간의 진화는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실상 멈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키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게는 지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창조물 중의 하나이며 필연적으로 이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겪은 경험을 중심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인터넷의 특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족하게나마 그에 대한 해결책을 보이고자 한다.

- 글의 전반적으로 주어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전반적으로 손봐이런건 / 수필같으면 크게 신경안써도 될 것 같은데 니가 적는글이
   수필보다는 사설에 가까운 것 같아서 좀 손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주어가 지나치게 반복되는 것 같으면 글을 좀 수정해서라도 주어를 풍부하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
- 지성이 있다 > 교육 받아야한다는 좀 부자연 스럽다고 생각해. 지성이 있다 > 지속적 or 영속적 문명 발전이 필요함 >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지가 적절하지 않을까?
- 인터넷 '역시' : 역시라는 말을 쓰기위해서는 앞쪽에 창조물에 대한 어느정도 구체적인 예시를 들거나, 그렇지 않을경우 인터넷이 인간이 이룩한 찬란한 문명의 한가닥/지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

약 20년 전쯤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설프게나마 컴퓨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마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를 통해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그때는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그때의 터무니없는 생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막 생겨나기 시작한 PC방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채팅도 하고 메일 계정도 만들었다. 다모임을 통해 동창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그때부터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했고,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날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친구간의 우정은 온라인에서도 메신저와 미니홈피를 통해 유지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쉽고 간단하게 물건도 살 수 있다. 한편으로 인터넷은 시간이 지나고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차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공유되는 정보의 상당부분이 음란물이라는 뉴스를 접하기도 하며 악성 댓글과 루머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연예인들, 심지어는 자살 소식까지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의 밑바닥에는 인터넷에 대한 교육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 단락은 뭔가 좀 끌리는 맛이 없는 느낌인데??? 왜지 :-( 첫문장의 표현이 조금 진부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꼭 중고등학교 작문 숙제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
-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 생각하는데 / 해당 문장의 주어가 불명확함
- 생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 '어느 정도'라는 말이 앞의 문장과 매끄럽게 이어지려면 빠지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
>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그로부터 10년, 황당했던 내 공상은 통신망의 발달과 PC방 사업의 활성화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이 되었다. 나는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할 수 있었고, 서로 다른 나이의 친구들과 채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또, 인터넷의 발달은 시간 마저도 뛰어넘게 해주었다. 바로 다모임 이라는 서비스가 나를 어린시절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써놓고 보니 구리네.. -_- 여튼 좀 수정할 필요가 있는 단락같다.
- 한편으로 <
- 인터넷은 가치 중립적이다. 살짝 뜬금없으니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해서 범위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글을 이끄는 것이 어떨지?

대학 재학 중에 나는 학생부원들의 도가 지나친 등록금 인하운동에 대해 온라인 게시판 상에서 비판했던 적이 있다. 학교 벽을 온통 비방글로 도배하는 것은 별로 효과도 없을 뿐이고 학교와 학생들 간의 불신만 조장한다는 요지의 글을 게시판에 남겼는데 그 글은 비교적 큰 이슈가 되었고 수많은 공격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사람들의 분노가 담긴 글들에 하나하나 답글을 다는 일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만약 그때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면 좀 더 부드럽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얼굴은 맞대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면 자신의 뜻이 쉽게 바뀌진 않더라도 상대의 의견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을 것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운전자가 보이는 차보다 보이지 않는 차에 대해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얼굴이 보이고 안보이고의 차이가 큰 것이다. >>>>>같은 이유로 얼굴이 가려진 인터넷에는 인간성이 제거되기 쉽다.<<<<< 인터넷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연결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분리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의 ‘아고라’ 같은 곳을 봐도 과도한 편 가르기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의 게시판 상에서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엄격하게 너와 나를 갈라놓고 있다. 그들과 다르면 나는 그들의 적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의사표현이 가능하다지만 막상 현실은 이렇게 개개인의 의사표현이 억제되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자유롭듯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들이 생길 수 있다. 아무리 다수의 비율이 절대적이어도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상에서 그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공격성, 나는 그것을 지적하고 싶다. >>>>>얼굴이 가려진 인터넷에서 때때로 약화되는 인간성의 상실이 공격성을 불러오는 것이다. <<<<<

지금 우리의 현 실태는 어떤가. 개인적 생각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짧은 임기 동안에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그래도 대통령이니 임기 동안에는 믿음을 보이고 건설적인 비판만 하자’고 말한다면 나는 소위 ‘알바’라는 비아냥거림 듣는다. 그와 반대로 미네르바나 허경영 같이 도가 지나치게 떠받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미네르바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다음의 ‘아고라’를 중심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은 그를 이명박과 대비되는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했다. 여전히 의혹이 있다지만 뉴스를 통해 밝혀진 그의 정체는 우리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 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보며 위기의식을 느낀다. <<<<<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궁극의 의사결정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수가 다수일수록 좋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그들의 나치즘은 어떻게 생각돼야 하는가. 그들의 믿음은 그릇된 것이었다. 미네르바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과장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은 그들에게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인터넷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압축된 실린더 안의 가솔린이 작은 불꽃에 폭발하듯 인터넷은 뛰어난 확장성과 복제성으로 삽시간에 전 세계에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 이러한 정보 공유 능력은 대부분 유용하지만 역기능으로 작용해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막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시기였고 동네에는 PC방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었다. 어느 날 PC방에 갔다 온 친구가 ‘빨간 마후라’를 보고 왔다고 자랑했다. 나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중생이 아는 오빠들과 찍은 포르노였는데 시중에 나돌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었다. 슬프게도 그 동영상 속의 주인공은 인터넷을 떠돌면서 수천, 수만 번, 어쩌면 수억 번 반복 플레이되며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일명 ‘개똥녀 사건’은 애완견의 대변을 치우지 않고 지하철에서 내린 개 주인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었던 사건이었다. 대부분 그 정도 잘못은 그저 주위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듣고 끝난다. >>>>> 하지만 인터넷에 퍼지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이 돼버렸다. 현대판 마녀사냥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사건들은 인터넷의 유용성의 이면에 존재하는 부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 하지만 인터넷이 가진 이런 폭발력이 인간성 약화로 인한 공격성의 증가와 함께 어우러진다면 가벼운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기보다는 스타로 여겨지는 연예인들이 받는 피해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안티사이트들, 성형전후를 비교하는 사진들, 각종 구설수 등등.

>>>>>인터넷은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인터넷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이 상당부분의 정보처리 과정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수동적이게 된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식인을 이용하면 금방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쇼핑몰의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들을 결재하면 며칠 내로 택배로 배달된다. 굳이 감자를 심고 캐고 하는 과정은 필요 없다. 결재하면 바로 배송되니까. 숙제마저 대신 해달라는 글도 많고 실제로 모범 레포트를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의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시간은 소중하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과정은 생략한다. 요청에서 바로 결과로 이어진다. 바로 그 점이 우리를 정보에 수동적이고 피상적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우리의 이러한 피상적이고 수동적인 면이 인터넷을 더욱 편리해지게끔 종용한다.

사실 편리한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그러한 허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과정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들은 정보의 처리에 있어서도 매우 피상적이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며 성급하게 용건만을 요구한다. 어느 날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나타나 마술 같은 언변으로 그 복잡한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결론을 제시한다. 대중들은 이미 그런 정보처리 과정을 판단할 힘이 부족하다. 오직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믿는가, 안 믿는가. 하나 둘 믿기 시작하고 눈덩이처럼 추종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믿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가담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 뭉치려하고 외톨이들은 밟아버리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도 죄는 죄다.’ 라고 말했다가는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통령의 미화 쪽으로 기울어졌다. 거기에 나타난 음모론은 미심쩍은 주위 정황들을 그럴듯하게 처리하여 망설이는 네티즌들에게 믿느냐 안 믿느냐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염병처럼 거대한 세력을 이루게 된다.

여기부터 해결책 or 결론인듯 ? ===============================================================

>>>>>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비인간성은 공격성을 야기하고 방대한 정보와 편리성은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태도를 야기하며 이 둘은 집단화를 통해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성을 유지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남의 의견을 수용하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우리 안에 잠재한 수동성과 인터넷의 편의성. 이 두 가지가 만든 함정 속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들어 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는 주입식 교육이 원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암기와 성적 위주의 교육방식은 주체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교육정책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작은 희망도 본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익명게시판’이다. 익명게시판은 게시판의 일부로서, 사실 매우 작은 일부이다. 하지만 익명게시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익명게시판은 일반게시판과는 다르게 글쓴이의 정보가 기록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글을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고 그로인해 평소 자신의 정체성에 묶여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을 담을 수 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속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게시판은 일견 흥미로운 장치다. 나 역시 익명게시판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익명게시판에는 단점도 존재하며 그 단점으로 인해 내가 재학 중일 때는 심심치 않게 익명게시판 폐쇄 건의가 들어오곤 했다.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 유용해 보이는 익명게시판이 종종 폐쇄라는 벼랑에 몰렸던 이유는 게시판 상에서 서로 이를 드러내고 싸우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보아온 심각했던, 비교적 많이 이슈화된 사건으로는 흡연문제를 들 수 있겠다.
한 후배가 익명게시판을 통해 “밖에 나가서 피워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그러한 요구에 담긴 다소 껄끄러운 뉘앙스가 선배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아무리 익명게시판이라지만 “버릇이 없다”는 요지로 질타를 한다. 서로 그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불타오르게 된다. 게시판이 과열되고 누군가가 지치거나 더 이상 그 문제가 흥미롭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그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면 익명게시판이 문제라며 폐쇄 건의가 제기된다.

내가 익명게시판에 주목하는 이유는 익명게시판이 현재 우리 삶의 일부인 인터넷에 대한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하고 나아가 해결방법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왜 자살을 했는가? 미네르바는 어떻게 경제 대통령이 됐는가? 그것은 최고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전용선으로 국민들이 각자 조금씩 힘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사실 개개인들에게는 매우 작은 힘이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장난삼아, 진지한척 하며 몇 줄 적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힘들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해 매우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현대사회,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터넷의 말과 의견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거대한 익명게시판과 같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굴레를 풀어낼 가능성을 본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보물선의 선장 같은 마음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말과 그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경탄할만한 문명의 이기를 찬양하고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처럼 그들은 맹목과 무지의 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익명게시판 폐쇄와 관련해서 나는 대학 친구와 게시판에서 댓글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익명게시판의 존속을 주장했고 친구는 폐쇄하자는 주장을 폈다. 그의 주장은 익명게시판은 생각 없는 말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자유에 비해 책임은 거의 없는 익명게시판의 성격상 장난스럽고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글들이 종종 나타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최진실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익명게시판은 폐쇄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인터넷은 유용하긴 하지만 모두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익명게시판의 그런 역기능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에 순기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익명게시판은 작은 규모다. 설사 익명게시판에서 상처받을 만한 글을 접했다 해도 자살까지 가지는 않는다. 내 친구는 이런 상처마저도 절대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어떻게 자기가 아파보지 않고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침대에서 떨어져본 아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칼에 베여본 아이가 칼을 다룰 때 신중해진다. 익명게시판을 통해 인터넷의 역기능을 접해본 사람만이 그것의 무서움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최진실을 조롱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익명게시판은 대한민국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온라인 세계에 가기 전 맞는 예방접종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익명게시판은 우리에게 ‘사고’하기를 요한다. 익명게시판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의 우리의 속마음을 얘기한다. 어찌 보면 연쇄살인사건 기사보다도 더욱 실제적이다. ‘저런 놈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수선하다’라고 욕하고 끝낼 수가 없다. 그는 바로 내 주변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저 겉핥기식으로 욕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또한 익명게시판 상에서 욕하면 그 욕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 말은 상처가 되고 내가 했던 말들도 상처가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런 사태에 오게 된 경위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 과정을 분석하게 된다.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은 없으며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분노하고 욕했던 것들이 결국 내 자신 안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어이없는 글을 보면서 분노하지만 그에게 깃든 무지와 맹목이 내 안에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를 더 이상 싸잡아 욕할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상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성장이기도 하다. 복효근 씨의 시처럼, 상처 입은 마음에는 꽃향기가 난다.

연년생 자식을 둔 집안은 항상 애들 싸우는 소리로 시끄럽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다툼과 쟁취, 시기, 질투, 음모, 배신으로 얼룩져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악의 종말을 가져다주는가? 항상 맞고 자란 동생도 결국 형을 용서하게 되고, 살아가면서 또 다른 못된 사람을 만나도 이해해주는 이해심이 생긴다. 형에게는 넓은 아량과 듬직함이 깃든다. 그런 것들이 결국 가정교육인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익명게시판을 대안이라고 제시했지만 그것은 정말 하나의 상징적인 대안일 뿐이다. 사실 익명게시판은 찾아보기 힘들고 지금이나 앞으로나 그것이 가진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보기는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익명게시판을 살리고 활성화하자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익명게시판과 같은 기능을 해줄 무언가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제도도 눈에 보이지만 그런 것이 제구실을 다 하려면 필요한 것은 우리 인식의 변화이다. 때로는 따스한 충고로써 때로는 따끔한 회초리로써 우리에게 그런 변화를 심어줄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수백, 수천 년 이어질 무구한 인터넷 역사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문명이 서툴지만 거대한 발전을 해왔듯이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인터넷도 위대한 우리 문명의 일부로써 나날이 발전해가리라는 믿음으로 제도를 만들어 정착해가고 노력을 병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 결론이 익명 게시판을 유지해서 거기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교훈삼아서 인터넷의 역기능을 막자는거야?
   아니면 서론에서 말했듯이 가치중립적인 인터넷을 바르게 파악하고 다루는 교육의 부재가 문제임을 말하는거야?
   난 좀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하는데? 흠 :-(

    그리고 글을 보면 인터넷이 사람들의 인간본성을 상실시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 같은데 익명게시판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건 좀 문제가 있는 논지가 아닌가 생각돼~
    읽다보면 결국 익게의 역기능-마찬가지로 익명성에 기반을 둔 마음의 상처???-을 순기능으로 생각해서 이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거든

   글이 길어서 자잘하게는 쓰기 힘들고, 주어가 없는 문장들을 위주로 고친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글을 고쳐나가는 방향으로 진행해봐
   이게 고치다보면 본능적으로 나라는 주어가 반복되면 글 자체를 고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 좀더 글이 풍성해지는 느낌일 들 것 같아
 
   그리고 글의 구성이 마치 익명 게시판을 인터넷 역기능을 막아줄 궁극적 대안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해.... -_-;;
   원래 논설문 쓰다보면 해결책이 참 난감하기는한데 좀더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너무 FM같은 해결책을 넣으면 심심하고, 작은거 하나 가지고 너무 오버해서 글을 적으면 이거도 웃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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